[다큐멘터리(Documentary)]EBS 게임에 진심인 분.

2022년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국내 교육방송 채널 EBS에서 게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다룬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 3부작 다큐멘터리는 이후 EBS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무료로 공개됐다.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인디게임 더 무비’나 비디오게임의 역사를 조명한 ‘하이스코어’ 등 해외에서는 게임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등장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게임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게임이라는 매체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게임에 진심인 분>은 그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1부 도입부에서는 여러 게임 커뮤니티 사이에서 농담으로 언급된 ‘고인의 짠내 나는 영상’을 그럴듯하게 재현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게임에 진심인 편>은 편협한 시각 없이 순수하게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징을 조명한다. 예를 들어 최근 게임업계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메타버스나 NFT, P2E 같은 개념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예로 언급되지만 특정 게임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여러 게임을 두루 예로 들어 균형이 크게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게이머들의 아그로를 이끌어온 게임중독법이나 셧다운제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다. 다만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본질적인 측면에만 집중할 뿐이다.

선천적으로 우리나라는 게임에 대한 시선이 그리 좋지 않았던 데다 바다이야기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거나 이른바 3N으로 불리는 과금게임의 부작용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순수하면서도 진지한 고민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을 다른 외부의 편견 없이 오로지 게임 자체에만 집중한 <게임에 진심인 분>이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1부 <장례식 때 틀어줘>에서는 8년차 개발자로 등장하는 개그맨 서태훈과 함께 게이머들 사이에서 연준자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게임캐스터 전용준이 등장해 게임의 본질적인 개념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게임에 동화된 듯한 인터페이스와 연출을 통해 게임의 본질적인 개념을 매우 효율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연준자와 서태훈의 영혼이 담긴 연기를 통한 작은 재미는 보너스이기도 하고. 한 가지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게임 선정이었다. 영상 순으로 바람의 나라, 공주 메이커2, 그리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예로 들었는데 이 정도면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게임을 잘 골랐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을 타깃으로 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좋은 감각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번 1부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게임을 시작하고 왜 게임에 빠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한다.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나 특별한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에 순응하고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며 넘어야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게임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게임은 가장 인간적인 활동이라는 결론을 내려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결코 낯설고 해로운 것이 아님을 표명한다. 이를 따로 보면 게이머들이 자신이 게이머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이어지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게임을 즐기는 것을 꼭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마지막 3부 ‘그런데 이제 예술을 곁들였다’에서는 게임이 예술의 영역에서 다뤄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과정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어차피 결론은 ‘게임은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고 귀결되는데, 이를 예술에 대한 고찰과 함께 다른 미디어가 어떤 과정을 체험하면서 예술의 영역으로 올라가 게임이 가진 특징을 담백하게 설명한다. 특히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언급을 통해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을 큰 과장 없이 풀어낸 것만으로도 3부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게임은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지만 꼭 예술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추구하는 것 또한 게임이 가야 할 좋은 길이긴 하지만 굳이 예술적인 방향에만 집착하는 것 또한 그리 좋은 형태는 아닐 것이다.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이나 스트레이(Stray)처럼 감각적인 비주얼과 서정적인 이야기를 앞세운 작품이 게임처럼, 엔터 더 건전(Enter the Gungeon)이나 뱀파이어 서바이버(Vampire Survivors)처럼 원초적 재미를 앞세운 작품도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술을 추구하는 게임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재미를 추구한 게임도 당연히 균등하게 관심을 받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게임에 진심인 분은 몰래 게임이라는 매체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단순히 한 명의 게이머로서 게임을 즐기는 선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게임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게임이 나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게임을 그저 유해하게 다루던 과거에서 모든 연령층이 골고루 게임을 즐기며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현재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게임에 담긴 의도와 메시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게임에 담긴 재미를 깊이 탐구하면서 이를 다른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리뷰어나 평론가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대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 그렇고 연극과 오페라에서 영화 및 드라마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이르는 영상 미디어가 그렇고 게임 또한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게임에 대한 진심에서 높은 권위를 쌓고 많은 게이머들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스타 평론가들이 나타날 것이다.

요약하면 ‘게임에 진심인 분’은 한국 게임 환경에서 나오는 가장 최선이자 최고의 게임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한국 게임의 역사가 일본이나 북미, 유럽보다 다소 짧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보통 한국 게임 역사의 진정한 시작은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적인 시선을 바로잡고 게이머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면서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궁극적인 강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게임에 진심인 분>이 그 역할을 아주 잘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고퀄리티 게임 다큐멘터리를 아무런 지불 없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복일 것이다. 한국 게이머라면 꼭 시청해야 할 다큐멘터리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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