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중에서도 희귀한 천문학자인데 별 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별을 안 본다는 게 무슨 뜻일까?아이러니컬한 제목도 호기심을 끌었고 검은 하늘에 무수한 별이 박힌 책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게다가 작가가 젊은 여자 천문학 박사라니!과학자라고는 흰 가운에 머리가 희고 검은 뿔테안경을 쓴 아이슈타인 스타일의 과학자만 떠올렸는데 이런 반전이~(편견이 무섭다!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놀란다.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왔고 기초가 튼튼한 독서가라는 사실이다.전공은 이과이지만 이 책은 문과생이 쓴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글을 잘 쓴다.이런 사람들 보면 정말 부러워!!! 난 전형적인 문과생이거든. ㅜ.ㅜ )
프롤로그를 보면 천문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직업으로 이어진 이유가 나온다.”그런 사람들을 좋아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게 도대체 뭘 지웠을까에 신나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TV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곳에 끝없이 전파를 흘려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에, 자연스럽게,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13쪽)- 나는 과연 이렇게 무언가에 즐겁게, 오래 몰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우주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치면서 우리 역사자료에서 천문기상관측자료를 무엇이든 찾아 분석하는 과제를 제시한 일화도 참신했다. 자신이 학부시절 쓴 소빙기(littleiceage)와 조선왕조실록을 표본으로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주마다 밝은 학생도 있었다는 점에는 교사인 나도 어렴풋이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스스로 주제를 정해 자료를 찾고 나만의 결론을 찾는 기쁨, 남의 글을 짜깁지 않고 스스로 담백하게 써 보는 즐거움을 발견한 친구들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오로라 혜성 초신성 빙하기 같은 일견 엉뚱한 단어와 함께 거론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만의 달콤한 비밀암호 같았다(51쪽)
그리고 대학이 가져야 할 진정한 의미를 지적한 문장도 좋았다.대학이 고교 연장선이나 취업 준비소만 아니면 된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것을 좀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아는 고통을 젊은이 한 조각과 기꺼이 교환할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존중하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56쪽).
주제에 몰두하는 직업을 가진 작가는 Enjoy의 의미도 다르게 해석한다.하나하나 검색해 보고, 찾아보고, 읽어 보고, 자료 분석하고, 그래프도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려 본다. 그래서 한 단계 전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마, 너무 즐거운 시간이야. 그리고 그 즐겁고 지루함이 자연의 한 조각을 발견하게 만든다면 금상첨화다.외국인 연구자들과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의 메일이 Enjoy!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파일을 첨부하면서 「자, 즐겨라!」라고 써 보내는 것이다. 지도교수는 그런 문자를 받으면 이 사람은 골치 아픈 걸 보내면서 뭘 즐기라는 거야, 하고 막무가내로 비꼬는 한마디를 하지만 사실은 본인도 벌써 반가움에 미소 짓고 계신다(79쪽)-정말 이 일(?) 같은 걸 즐기는 게 느껴진다. 발견의 즐거움!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을 다룬 이야기는 정말 화가 나고 실망했다. 한국 언론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때가 많은데 이 천문학자도 그 점을 안타까워했다.언론은 어쩌면 사람들은 굉장한 과학자를 조명하고 싶어한다. 고난을 극복한 영웅담에 빨리 감탄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를 길러 그중 한 사람이라도 훌륭해지는 과정을 지지하거나 지켜보는 것은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날 리가 없는데.(146쪽)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밝혀진 것 중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천상열차 분야 지도가 한국 일만원권 지폐의 뒷면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이 사용해 본 지폐에 이런 한국의 과학 이야기가 담겨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제는 이 만원짜리 지폐를 꺼낼 때마다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뒤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동그라미가 한반도의 옛 밤하늘을 그린 지도 ‘천상열차 분야 지도’이다.
섣달 그믐, 초승달의 구분도 모르는 문송인 나도 이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의 한 장면에 호기심을 갖고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수정하고 싶어하는 이 박사 작가의 매력에 푹 빠졌다. 게다가 김하나의 ‘독서아웃’에서는 작가와의 대화 팟캐스트도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들었다. 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과학자라니! 이면지에 이면지 재활용 도장 찍는 게 쉬는 날이라는 농담과 유머도 좋다. 김하나 작가도 그랬는데 이분의 다음 책은 또 어떨까. (그는 언제 책을 낼지 모른다. 책만이야기가쌓이면그때책이나온다고한다.
심심할 때 이 책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유쾌해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