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모든 정혜선 재혼 아내 근황 배우 박병호 프로필 나이과거 출연 작품

지난 5월 8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배우 박병호, 신충식의 전원일기가 공개됐다.

스님 전문 배우라는 공통점이 있는 박병호와 신춘식은 슬기로운 노후생활 중이었다. 이날 방송에서 박병호는 남해 라이프를, 신춘식은 강화도 라이프를 각각 공개했다. 두 사람은 맡아온 역할만큼이나 가치관마저 비슷해 눈길을 끌었다.성명 박병호(朴 浩)

출생 1937년 7월 28일(84세)

경기도 경성부 신당정

학력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데뷔 1962년 KBS 공채 탤런트 1기

본관 함양 박씨

종교불교 박병호 프로필 배우 박병호는 1937년 7월 28일 생으로 올해 86세입니다. 박병호의 고향은 경기도 경성부 신당정이고 가족으로는 아내가 있으며 3남매가 있습니다.

박병호 종교는 불교이고 학력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박병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4선 국회의원 우상호의 외삼촌이자 조카사위가 배우 안성기라고 합니다.

박병호 과거 박병호는 어려서부터 서울 청구국민학교를 비롯해 한양중학교, 한영공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까지 다니며 연극 무대에서 연기, 1960년대에는 극단 신협이 상연한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도 출연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학도호국단 3기 총회장도 지냈다고 합니다.

박병호 데뷔와 출연 작품 활동 이후 박병호는 1962년 당시 서울텔레비전방송국(KBS) 1기 공채 탤런트로 선정됐고, 드라마 그날이 이면을 통해 본격 데뷔했습니다. 박병호는 데뷔 초 KBS에서 활동하다가 중간에 동양TV(훗날의 TBC)로 옮겨 여러 드라마에서 조연을 총망라했고 1967년 수요연속극 원효대사를 시작으로 승려 역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박병호는 당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탈모가 와서 스님 역에 어울리는 외모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후 그는 1970년대 ㄷ에서 2000년대까지 안방극장에서 사극에서 스님 역을 맡게 됩니다.

박병호는 1962년 영화 ‘원효대사’에서 원효역을 시작으로 50여 편의 작품에서 승려역으로 출연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나중에 반야심경을 잘 익히게 됐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배역은 용의 눈물로 무학대사 역으로 전설의 고향을 지나던 승려로도 자주 출연했습니다. 2014년 드라마 ‘정도전’에서 ‘용의 눈물’에 이어 다시 무학대사로 출연해 오랜만에 TV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후 2015년에는 ‘징비록’에서 사명대사 역으로 출연했고 1995년에는 서궁에서 사명대하 역을 맡은 뒤 다시 같은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박병호는 200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가끔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정도였고 2007년부터는 아내와 함께 남해군 시골에 정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박병호는 2012년 명예 남해군수로 위촉되기도 했고, 그 외 SBS 시트콤 ‘가급적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동작소방서장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박병호 기타 활동 박병호는 배우 생활 동안 1976년 한국텔레비전방송연기자협회(현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한국연예인새마음봉사실 실장, 한국바른말연구원 연구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때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김종필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지도위원 겸 전국 유세위원을 지냈고, 1988년 13대 총선에서 신민주공화당 소속으로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떨어진 후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서울 성동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고 합니다.

박병호 결혼의 아내(부인) 정혜선 누구 박병호는 배우 정혜선과 1963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박병호와 아내 정혜선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박병호는 1937년생 86세이고 아내 정혜선은 1943년생 82세로 4살 차이라고 합니다. 결혼 당시 정혜성은 22살이었고 박병호는 26살이었다고 합니다.

박병호의 아내 정혜성의 본명은 정영자이고 1942년 2월 21일생으로 올해 78세라고 합니다. 정혜성의 고향은 서울이고 정혜성의 학력은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혜선은 박병호 같은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1960년대 액션 영화에서는 암흑가 여보스로 대중에게 주목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도 노인 역을 많이 맡았을 정도로 연기 폭이 상당히 넓은 배우 중 한 명입니다.

정혜성은 드라마 ‘그날이 오면 잊을 수 없다’,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화, 청춘의 함정 사랑과 야망, 산 너머, 배신의 장미, 큰 꽃선녀님, 하늘이시여, 제빵왕 김탁구, 황금신부, 백년의 유산, 신들의 만찬, 하나님의 선물 14일, 금 나와라, 얼른’ 등과 영화 ‘연산군, 감동,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애자, 고스트맘 등에도 출연했습니다.

박병호 아내(부인) 정혜성 결혼스토리 박병호는 아내 정혜성을 KBS 1기 공채 탤런트 동기로 처음 만나 1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됐는데 당시 정혜성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 결혼한다고 하자 그 충격으로 약을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가 정혜성을 의지해 살았기 때문이래요. 어쨌든 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에 골인, 이후 3남매를 둘 정도로 사이 좋았다고 합니다.

박병호 사업과 이혼하지만 이후 박병호가 영화제작에 손을 대기 시작해 실패한 뒤 엄청난 빚을 지게 됐고, 결국 박병호와 정혜성 부부는 결혼한 지 12년 만인 1975년 이혼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로는 성격 차이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박병호의 사업 실패로 갈등 때문에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병호: 제가 사업을 이것저것 많이 했다. 부채가 당시 금액으로 4억원 정도가 됐다.”

박병호: “영화는 제가 제작한 게 서너 편인데 (영화계)판에 길지 않아서 모르니까 출연료라든지 연출료라든지 조명이나 임대료를 자세히 몰랐다. 그래서 지출이 (다른 영화에 비해) 1.5배 더 들었다. 제작하는 것마다 흥행이 안 됐다.”

이후 박병호는 수년간 거리 세일즈맨부터 밤무대가수까지 하며 끈질기게 돈을 벌었고, 전 부인 정혜선 역시 이혼한 뒤에도 오랫동안 전 남편 박병호의 빚을 떠안게 됩니다.

실제로 전혜선은 당시 박병호의 빚 때문에 집은 경매에 넘어간 상태로 월세방을 전전긍긍하며 3남매를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고, 또 자신에게 남겨진 빚을 갚기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박병호도 끈질기게 돈을 벌면서 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박병호 재혼 아내의 근황 박병호는 전원의 정혜선과 이혼한 지 2년 만인 1977년 12살 연하의 농구선수 출신 디자이너 박정숙씨와 재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남자 배우들은 재혼 결혼식에 많이 참석했는데 여자 연예인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박병호는 승려 전문 배우로 활동을 이어가며 배우 생활을 마치고 2010년 고향인 경남 남해군으로 귀농해 지금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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